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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본 곳

(울산)대왕암

by samseopmom 2025. 2. 25.

4월의 어느 날, 봄바람이 부는 날씨에 울산 대왕암을 다녀왔습니다. 계획도 없이 즉흥적으로 떠난 울산 여행이었습니다. 남편의 일 때문이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울산에서 가볼 만한 곳을 검색하다가 ‘대왕암’이라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바다를 보기 위해 방문한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온 여행이었습니다.

 

그날의 날씨는 다소 싸늘했지만, 초록초록한 나뭇잎들과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벚꽃이 어우러져 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런 기대 없이 방문한 대왕암은 바닷가로 가는 길도 아름다웠지만, 무엇보다 바다가 웅장하고 시원한 느낌이었습니다. 대왕암으로 향하는 길은 울창한 송림이 우거져 있었고,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솔향이 코끝을 스쳤습니다. 길을 따라 걸으며 벚꽃이 살랑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 수평선이 탁 트인 바다와 함께 바위들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바다는 원래 시원하고 넓은 풍경을 선사하는 곳이었지만, 대왕암은 특히 더 웅장한 느낌이었습니다. 문득 예전에 경주에서 방문했던 문무대왕릉이 떠올랐습니다. 문무대왕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유해를 동해에 안치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대왕암에 대한 정보를 더 찾아보니, 이곳이 문무대왕의 왕비가 잠든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따라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경주의 문무대왕릉은 작은 바위 같은 느낌이었지만, 대왕암은 그보다 훨씬 크고 웅장했습니다. 바위 하나하나가 마치 오랜 세월을 견뎌온 듯한 기개를 품고 있었습니다.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어왔고, 그 바람에 실려 오는 파도 소리가 마음 깊숙이 울려 퍼지는 듯했습니다. 전설을 알게 되니, 대왕암의 바위들이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흔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대왕암으로 가는 길을 걸으면서 전설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문무대왕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바다에 무덤을 만들었고, 왕비 또한 같은 마음으로 바다에 잠들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마치 전설 속 용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바위 위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 하얀 파도가 부서지며 힘차게 흩어졌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저는 이곳이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아니라, 수백 년을 이어온 역사와 신비를 품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대왕암 앞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곳이 예로부터 전설과 함께 전해 내려오며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았을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바위들은 저마다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그 자체로도 한 편의 웅장한 조각 작품 같았습니다. 어쩌면 이곳에서 바람을 맞으며 용이 된 왕비의 전설을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바위들의 표면은 거칠고도 부드러웠습니다. 햇빛이 비칠 때마다 바다색과 어우러져 은은하게 빛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바위 사이로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더욱 생생하게 들렸고, 그 소리는 바다의 호흡처럼 느껴졌습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파도가 높아졌다가 잦아들기를 반복했으며, 그 모습이 마치 대왕암이 바다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해안을 따라 걸으며 발밑에서 들려오는 자갈 소리마저도 자연의 일부처럼 조화롭게 들렸습니다.

 

잠시 길을 따라가 보니, 작은 전망대가 나왔습니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대왕암의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을 주었습니다. 바위들이 모여 있는 형태가 마치 거대한 용이 바다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설을 알기 전에는 단순한 자연경관으로만 보였겠지만, 이제는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더해져 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저처럼 감탄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사진을 찍거나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긴 이들도 보였습니다.

 

해가 기울 무렵, 바다는 또 다른 색으로 변했습니다. 저녁노을이 바다 위로 물들면서 대왕암의 실루엣이 더욱 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붉은빛이 바위에 반사되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고, 순간적으로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이곳이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하나의 특별한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여행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깨달음을 줍니다. 단순히 바다를 보러 왔다가 역사와 전설을 함께 품고 돌아가는 여행이 되었습니다. 기대 없이 왔지만, 돌아갈 때는 마음속에 깊은 인상을 남긴 곳이 되어 있었습니다. 대왕암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와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대왕암을 떠나면서, 저는 이곳에서의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다를 따라 걷던 길, 벚꽃이 살랑이는 모습, 거대한 바위들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신비로운 전설까지. 다시 경주의 문무대왕릉도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또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또 다른 감상을 안고 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기대 없이 떠났던 울산 대왕암 여행은, 저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